커뮤니케이션 달인의 온화한 향기
2009.12.11 09:56 CHEIL WORLDWIDE, 조회수:4705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경연 국장



꽤 오래 전, 누군가 그녀를 이렇게 평했다. 피죤 같은 사람. 그녀가 팀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 따다닥 스파크가 튈 정도로 격했던 분위기가 시나브로 풀어졌나 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기마저 향기롭게 피어올랐나 보다. 서로가 서로를 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서로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나 보다. 그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경연 국장 때문에.

휴가는 나의 힘

근무시간에 경계를 두지 않고, 트렌드와 사람들의 변화를 향해 시야를 활짝 열어두는 그녀의 열정의 원천은 뜻밖에도‘쉼’이다. 그녀에게 휴가는 일상 속에서 부대끼느라 좁아진 시야나 마음을 풀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세계 곳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시간을 즐기는 휴양지를 즐겨 찾는다. 그녀가 손꼽는 휴양지는 멕시코의 칸쿤. 일 때문에 알게 된 곳이지만, 멕시코가 자랑하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야 잉카 유적지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소일하는 게 좋았단다.

“상황과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텐데, 일상에 묻히다 보면 생각도 한정되고 아집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휴양지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내 일상과는 다른 삶의 모습, 다른 공간이 보이죠. 서로 다른 사람들 속에서 공통분모나 어떤 트렌드를 읽기도 하고요. 정신없이 돌아갈때, 그렇게 한 번씩 끊어주는 게 필요해요. 안 그러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녀의‘쉼’은 일상을 멈춘 채 그 시간 속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관계의, 생각의 여유를 빼앗는 일상을 잠시 떠나 그녀가 가진 본연의 에너지로 돌아가는 시간인 것이다.

궁극을 향한 커리어 패스

온유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의 커리어는 정복자 이미지를 드러낸다. 사학과를 졸업한 후 유학을 가 광고홍보를 전공하면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PR이었다. 당시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중 PR전공은 그녀뿐이었다. “미개척 분야 였어요. 아직은 아무도 안 하지만 확장될 가능성이 보였고, 그렇다면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고 싶었어요.”

제일기획에서의 이력도 남다르다. AE로 입사한 후 프로모션팀에서 전공을 살려 PR을 담당했다. 마침 삼성전자가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던 때라 삼성전자와 제일기획이 함께 글로벌 시장의 노하우를 쌓아간 시간이었다. 그러다 국내시장 경험을 쌓기 위해 AP로 옮겼고, 좀 더 긴 호흡으로 광고를 바라보고 싶어 커뮤니케이션연구소의 전신인 브랜드마케팅연구소로 옮긴 것이 지난 2007년이었다. 광고 전반을 광범위하게 다루는 AE로 시작해 조금씩 더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든 셈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판 사람이 그 분야의 노하우를 갖고 있듯, 경험의 각도가 다르니까 그게 또 다른 노하우가 되는 것 같아요. 같은 현상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데 저는 습관적으로 지난 경험의 관점들까지 소환해서 바라보는 거죠.”

아무도 선택 안 한 곳을 향해 홀로 뚜벅뚜벅 걸어간 그녀, 그러나 전사나 콜롬버스 같은 개척자보다 현명하게 주변을 아우르는 구루(Guru) 이미지가 그녀에겐 더 적합하다.

생각의 틀을 벗어라

그녀에겐 무언가를‘뗀’사람 특유의 여유와 통찰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작성하는 이맘때가 되면 후배들은 종종 그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런 후배들에게 그녀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은‘궁극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저의 궁극은 커뮤니케이션 마스터에요. 지향점이 있으니까 직종이 바뀌는 걸 겁내지 않은 것 같아요.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보면 각각의 틀을 경험한 게 도움이 되고, 각각의 직종이 연장선상에 있으니까요. 지금 위치요? 궁극까지 열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지금 여섯 번째나 일곱 번째 계단쯤인 것 같아요. 그동안 3~4년 주기로 자리를 옮겼는데 앞으로 한 번 정도는 더 변할 것 같아요. 변화의 주기는 더 길어지고 결정도 더 신중해지겠죠.”

일상으로, 사람들 사이로 깊이 각인될수록 그녀는 고착되지 않으려 한다. 무념무상무주(無念無相無住). 책상 앞에 붙여둔 이 문구는 언젠가 화엄사에서 휴가를 보낼 때 우연히 만난 스님이 전해준 말씀이다. 무엇에든 집착하거나 틀에 얽매이지 말아라. 일을 할수록 결과에 집착하고 사람에 얽매이게 되고 어떤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이 결국 해석의 틀로 규정되어 진짜 중요한 것을 못 보게 하는 장애물이되기도한다.“

스님말씀을듣는순간‘한번털어 버리고 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건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거창하게 말하면 그게 바로 통섭이잖아요.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거기에서 시너지를 얻는 것. 결국은 얼마나 자신을, 생각을 열어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내느라 그녀는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리프레시가 필요한 때, 산사에서든, 휴양지에서든 그녀는 머물던 곳의 여유와 향기를 고스란히 품고 돌아와 사람들 사이, 일과 일 사이를 다시금 부드럽게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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