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reative 2] 크리에이티브와 '코페르니쿠스'
2015.06.10 12:00 광고계동향, 조회수:3643
만약 지금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 주위를 태양과 행성들이 돌고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당신 머리가 돌고 있지 않니?”
500년 전이라 해도 상황은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 난 중세의 사람들을 이해한다. 코페르니쿠스라는 공룡 같은
이름을 가진 작자가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다니, 태양이 저렇게 움직이는데 대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수작이냐는 말이다. 상식을, 고정관념을, 신념을 깨는 건 그만큼 어렵고 황당하며 불가능에 가깝다.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이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밥 먹듯이, 그리고 게 눈 감추듯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코페르니쿠스보다 사정이 나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지구는 돈다고 말하는 크리에이티브들을 만나보자.

 
 
 
글 ┃ 박선용 한컴 CR1그룹 CD
 

Peugeot, Ice cream / Y&R, Brasil            Peugeot, Brush / Y&R, Brasil
 
Peugeot / Y&R, Brasi

 
이 광고는 중력의 법칙을 깨고 있다. “The right part doesn't work in the wrong place”라고 말함으로써 PEUGEOT TECHNICAL SUPPORT의 정교함과 완벽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 실제로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는 것 같은 간지러움을, 붓의 꺼끌거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닭살을 유발하는 아트워크가 좋다. 더욱이 이렇게 핵심을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부럽기까지 하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니까 ‘놀랍다’로 말을 바꾸겠다.
  
 
위_ smart, Fiat / CLM BBDO, France
아래_ smart, Mini / CLM BBDO, France


▲smart / CLM BBDO, France
 
제품이 잘린 시안을 본 광고주는 솥뚜껑만큼 커진 동공을 부여잡고 애써 태연한
척 말라버린 입술을 떼며 입을 연다. “(금쪽같은)저희 제품을… 이렇게 잘라도
됩니까?”
 
smart 광고주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면 이 광고는 집행되지도 않았을 테지만,
제품과 로고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세상에서 이 광고 역시 중력의 법칙에 위반
되는 광고일 것이다. “New smart fortwo. Still only 2.69m”란 포인트를 팔기
위해 Fiat와 Mini를 희생양 삼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검객의 필살기를 보는 것 같다. 고수의 한 칼에 손이 베일 듯 뒷목이 서늘하다. 
 
 
위_ IKEA, Assembly Fail-Bed / 아래_ thjnk, Germany

▲IKEA / thjnk, Germany
 
 
조립 서비스를 말하기 위해 레이아웃을 분리해버린 IKEA. 로고가 좌상(左上)인지 우하(右下)인지, 헤드라인이 오른쪽 맞춤인지 중앙 정렬인지를 고민했던 자들에게 신선하고 야릇한 좌절감을 안겨주는 이 옥외광고 역시 레이아웃에 관한 법칙을 무너뜨린 수작이라 생각한다. CM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고 무림(武林)이지만 이런 인쇄물을 볼 때마다 ‘벌교 가서 힘자랑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레이아웃의 도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_ Daiya Foods, Hard to notice 1/ TDA_Boulder, Boulder, USA
아래_ Daiya Foods, Hard to notice 3/ TDA_Boulder, Boulder, USA


 
이 아웃도어 매체를 통해서도 광고주는 거품을 물게 된다. “이것 보세요, 우리 피자가 유제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잘 몰라서 알려달라는데, 그것보다 이 (보이지도 않는)광고를 알리는 게 더 쉽다니… 장난하십니까?”(IT’S EASIER TO NOTICE THIS AD, THAN NOTICE OUR PIZZA IS DAIRY-FREE) 하지만 장난이 아니라 진짜 광고다. 심지어 눈에 안 띄는 곳에 매체를 잡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사실 이 엄청난 반어법을 소비자들이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시도 자체는 기존 법칙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정도로 파격적이다. 정말 안 보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매체를 잡은 걸까? 광고를 보고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성직자였던 코페르니쿠스 자신 역시 자신의 발견이 괴로웠을 것이다. 치사하게 신앙과 과학의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책이 출간되던 해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하니 이 놀라운 진리의 발견이 쉽게 세상과 조우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의 법칙을 뒤집으려는 수많은 코페르니쿠스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비포장도로를 달려가고 있다. 상식을, 고정관념을, 신념을 무너뜨리는 크리에이티브, 그것은 코페르니쿠스가 바라보았던 하늘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세상과 다르게 말함으로써 받아야 하는 비난과 찬사의 어느 지점에서 끝없이 회전하고 있는 외로운 소행성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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