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History] 사상 최대의 광고 캠페인 - 헨리 포드(Henry Ford)드디어 한국에 등장
2014.03.26 02:07 광고계동향, 조회수:8582


포드가 한 이 대대적인 기업광고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과거 19년간 폐사가 제조한 차 대수는 무려 1,500만 대.
즉 3억만 여의 이동 마력을 세계 교통계에 공헌한 것입니다.
나는 폐사의 제품을 다만 공업품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즉 지상의 인류 생활에 일층 더 안주(安住)와 이락(怡樂-즐거움)을
주려는 대이상(大理想)을 주안으로 예의 노력하여 거둔 바
귀한 결정(結晶)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1908년 10월 1일부터 1927년 5월 27일 사이에 포드가 세계 최초로 일관 생산 방식으로 T-모델 자동차 1,500만 대를 판매한 것을 말한 것이다. (1908년 첫 T-형 1대 생산에는 12.5시간이 소요되었으나 6년 뒤에는 불과 1.5시간 밖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신포드 자동차란 다름 아니라 새로운 모델이라는 의미에서 ‘A’ 모델이라 이름 지은 차를 말한 것이다.

그 무렵 동아일보는 하루 6면 발행이었으니 이 전면광고 크기를 현재로 환산하면 6페이지쯤 되는 셈이니 대담무쌍한 매체 이용이었다. 이튿날 2월 24일에는 다시 “신포드차의 가격은 매우 저렴(新포드車의 價格은 매우 低廉)”이란 전면 광고가 나왔다. Ford 자동차 상표가 등장했고 새로 나온 포드 자동차의 특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2월 25일이 되자 드디어 제품이 선을 보였다. 포드 세단을 두드러지게 보이고 네 가지 승용차와 한 가지 트럭 사진이 다시 전면 광고에 게재되었다.

3일간 연이어 한 회사가 전면광고를 게재한 일은 일찍이 한국 신문광고사에 없던 일이었다. 더구나 그 광고방식은 일종의 티저광고였다. 물론 쉐보레(Chevrolet)도 뒤질세라 광고전에 뛰어들었다. 다만 선수를 친 것은 포드였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절이라 일본 요꼬하마(橫濱)에 있는 ‘일본포-드주식 회사’가 광고주였다. 일본에 포드와 GM이 조립공장을 세운 것은 각각 1924년과 1925년인데 포드가 1년 앞섰다. 영국, 프랑스 자동차도 일본에 진출했으나 두 미국 자동차회사와는 경쟁이 안 되었고 일본 자동차 시장은 포드와 GM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2월 25일부터 3일간 포드는 서울, 평양, 부산, 대구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다시 광고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포드, GM의 런칭 캠페인 이후의 광고도 역시 크기에서 우선 신문 3분의 1정도이고 그 당시로서는 변형광고를 했다.

자동차의 전략적 가치를 예견한 일본 육군성은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자동차 제조, 구매자에게 지원금까지 제공했으나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본정부는 1932년에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서 미국 자동차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1936년에는 자동차 생산을 허가제로 바꾸었다. 얼마 뒤에 미국 자동차는 일본에서 철수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토요타(TOYOTA)의 시작은 일본 정부가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193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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